28/07/2026
길 위에서 만나는 인문학
새벽 3시 30분, 어느새 날이 밝아 가까운 호수로 향했다.
새벽 기온은 영상 13도. 긴 옷을 챙기지 않고 나서는 바람에 한 시간 가까이 사시나무 떨 듯 추위와 씨름했다. 여름인데도 호수 위에는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수면이 만들어 낸 새벽의 기운은 계절마저 잠시 잊게 할 만큼 신비로웠다.
4시가 조금 넘어 해가 떠오르자 비로소 몸이 풀리기 시작했다. 호숫가를 천천히 걸으며 야생동물을 만나고,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다.
모기는 없었지만 처음 보는 벌 비슷한 날벌레와 매미, 이름 모를 곤충들이 연신 주변을 맴돌며 낯선 손님을 맞이했다. 길 곳곳에는 '야생곰 출현 주의'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주변을 한 번 더 살피게 만들었다. 그 긴장감마저 이곳에서는 자연의 일부처럼 받아들여졌다.
함께한 일행들과는 하루에도 몇 번씩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이어졌다. 장비를 잃어버린 줄 알고 한동안 낙심했다가 자동차 안에서 발견되어 모두 안도의 웃음을 짓기도 했고, 셔터가 눌리지 않는다며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고 왔지만 알고 보니 렌즈 캡이 닫혀 있었던 일도 있었다.
사진이 너무 밝게 찍힌다며 카메라가 고장 났다고 다급하게 달려왔지만, 원인은 장노출 촬영을 하면서 ND 필터를 장착하지 않은 것이었다. 숙소에서 밤새 배터리를 충전해 놓고도 새벽에 카메라에 넣지 않은 채 촬영지에 도착해 그제야 배터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열심히 촬영을 마친 뒤 메모리 카드를 넣지 않은 채 셔터만 눌렀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들은 초보자에게만 일어나는 실수가 아니다. 오랜 시간 사진을 해온 경험 많은 분들에게도 적지 않은 나이와 피로가 쌓이면 순간적으로 깜빡 잊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 순간에는 모두가 당황하지만, 이유를 알고 나면 서로를 바라보며 웃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도 어쩌면 이런 소소한 해프닝들일지 모른다.
한참을 걷고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덧 아침 6시. 숙소로 돌아와 야외온천에 몸을 담갔다. 뭉게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나가는 자동차 안에서도 온천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일 듯할 만큼 시야가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유난히 길다. 오늘처럼 보내면 낮 시간이 17시간이나 된다. 그만큼 더 오랜 시간 자연과 마주하고, 더 많은 순간을 마음속에 담아둘 수 있었다.
성격상 여행 내내 직접 운전을 해야 하다 보니 일정이 막바지에 이를수록 피로도 함께 쌓여간다. 몸은 지쳐가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새로운 만남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로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사진을 남기는 시간이 아니었다. 익숙한 일상을 잠시 비워 두고, 지쳐 있던 마음을 새로운 자연과 사색으로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긴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호수, 야생동물과 마주했던 순간, 그리고 함께 웃었던 크고 작은 해프닝까지….
사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 기억 속에서 다시 한 번 빛을 얻는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모든 순간은 그렇게 또 하나의 사진이 되었고, 오래도록 꺼내 보게 될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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